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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킹을 가자고 하면 종종 '어차피 내려올거 왜 올라가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장기하는 이 문제를 가지고 등산은 왜 할까라는 노래까지 만들었다. 요즘 내년 초봄에 산티아고를 가야지 그런 생각을 한다. 걸으러 가야지. 동네에도 산도 많은데 왜 거기까지 걷고 싶냐고 하면 '인생을 reset하고 싶어서'라고 장난섞어서 이야기했다. 그렇게까지 돈을 쓰고 긴 시간동안 단조롭게 짝이 없는 걷기를 해야될까 아직 사실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걷기를 좋아한다. 왜인지는 잘 생각해보지는 않았지만 정직하고 단순하게 사는 리듬이 좋아서인것 같다.
걷는것이 참 정직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걸은 만큼 보이고 천천히 그 시간과 땅을 누빌 수 있다는 점에서 mindful한 것 같다. 바람이 이렇게 시원하구나, 계절이 벌써 바뀌어 바람이 선선해지고 있구나, 나무가 휘어지고도 잘 살아남았구나, 숲에서는 이런 소리들이 나는구나를 깨달으면서 감각들이 살아나는 것 같다.
하와이에 나루터 언니가 살 때에 우리는 한참을 걸으며 하정우 얘기를 했다 (갑분하저씨ㅋㅋ) 우리도 하와이를 너무 사랑하고 자연에 속해서 '식물같이' 지내다 간다는 하정우의 말이 참 좋았던 것 같다 (나중에 알게된 것이지만 그의 책, '걷는 사람, 하정우'에는 '동물 같이'라고 되어있었다!) 나는 평소에도 체력이 좋은 편이어서 잘 지치거나 힘들어하지 않기도 하는데다가, 걷고나면 기분도 상쾌해지고 삶을 성실하게 임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해서 만족감이 있다 (입맛도 좋아지고 뭘 먹어도 다 맛있다. 좋은 것인지 위험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은아가 있을 때에 우리는 시간을 내서 어디론가 잘 걷고 잘 먹으며 지냈던 것 같고 종종 다른 친구들도 초대해서 모임도 만들고 (건돼모임이라고 했었다) 등산화도 여러 켤레 팔았다ㅎㅎ 우리는 방판원을 했어야되었다는 이야기도 하며 시덥지않은 농담을 하면서- 책을 읽으면서 그때 생각도 많이 나고, 걸으면서 인생이 바뀌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에서 묘한 동질감과 위로가 되기도 했다. 내 인생이 바뀌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막막하고 지체되어있는 것같은 자리에서 그래도 걸으면서 마음을 다시 다지고 시작해보는 계기가 되고 있기는 하니까. 나중에 이 시간을 귀하게 다시 돌아보게 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걷기 좋은 계절인 가을이 오고있어, 지난 주말에 새벽같이 일어나 산에 다녀왔다. 소풍가기 전날처럼 기대가 되고 짐을 이것저것 싸놓는 시간마저도 좋다. 느리게 걷는 즐거움'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구절구절이 참 좋다 (걷는 사람들끼리 통하는 것 같은 묘한 부심이 느껴진다.
빠른 속도, 유용성, 수익, 효율성을 중시하는 요즘 세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걷기는 느림, 유연성, 대화, 침묵, 호기심, 우정, 무용성을 우선시하는 저항행위이다.
그 시간을 정직하게 발로 밟아 기억하는 것이 좋더라. 나의 시간과 체력을 할애한만큼 노곤해지는 것이 정직한 느낌이 든다. 내 안에 에너지가 얼마나 있는지 살펴보고 발바닥은 안아픈지, 허리는 괜찮은지 주의를 기울이게 되는 것도 그 시간에 mindful해지는 것만 같아서 정서적으로도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다. 혼자 걸을 때가 더 많은데 시간이 제한되어있다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그 시간에 대한 애정이 생기곤 한다. 내 안에 다른 관심들로 흩어져있던 있던 분주함이 가라앉고 좋은 영감이 들 때에도 있다 (느리게 걷는 즐거움에서는 '근심걱정의 무게로 너무 무거워 삶을 방해하는 생각들의 가지치기인 셈이다'라고 했다. 멋진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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