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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대로 된 미팅도 있더라
    DC 직장 생활 2020. 9. 25. 08:30

    이전 회사를 무조건 나쁜 것만 있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정말 손에 꼽히는 단점은 (준)고문 수준의 미팅이었다. 퇴사하려고 인수인계 미팅을 할 때에도 이야기하기도 했다. 미팅을 일주일에 한번 오피스별로, 한달에 한번씩 전체 직원들이 모이는데 생산적인 시간이 아닌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거의 3시간이나 되는 시간동안 앉아있는데 대부분은 위에서 전달사항을 '지시'하고 직원들은 일주일이면 일주일, 한달 간의 정해진 행사 일정을 읊는다. 그건 이미 일정표에 이미 다 공유가 되어있지만 아무튼 한다. 서로의 일을 알아야된다고 하지만 그 일을 듣는 사람은 별로 없다. 같이 모여서 얼굴 한번 더 보는 것이 미팅의 목적인가 싶기도 하고 끝나고 어떤 메뉴를 먹을지 생각하며 이 시간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초반에는 의견을 제시하고 질문을 하기도 했는데 상사들은 내가 회사의 정책과 방향에 잘 순응하지 못하고 반항적인 태도를 가진 것이라고 생각하셨다. 내 얼굴에 침뱉고 내 점수 깎아먹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는 입을 닫아버리게 된 것이다. 원래 하던대로 하는 관습에서 벗어나기는 이토록 어렵다는 것을 경험하면서는 이게 회사 생활인건가 싶어 입을 다물고 있으면 중간은 가게되는 시니컬함을 얻게 되었다. 꼭 내 말이 맞다는 것이 아니고 중요한 일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최소한 의견을 나누어 보고 일을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방향으로는 가야되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었는데, 이 정도도 받아들여지지 못한다면 이 에너지를 다른 곳에 쓰는 것이 더 낫겠지 싶었다. 

     

    예를 들어 연례 기금마련 행사(fundraising gala)에서 직원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새로온 직원들에게도 전혀 설명을 해주지 않고 준비하라는 식이었는데, 식순을 어떤식으로 하는 것이 좋을지 작년의 피드백을 받은 것에 대해서는 올해 준비할 때에는 어떠한 언지도 없었다. "작년 피드백 받았던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반영이 되었나요?" 라고 질문하니 다시 찬물이 쫘악- 끼얹어진다. '조금 더 참고 입을 다물었어야되나' 싶었다. 이사회에서 review했다고 하면서 "어떤걸 얘기하시는 건가요?"라고 하시니 맥이 빠진다. 작년에 행사 끝나고 너무 너무 성공적이었고, 모두 모두 감사해요 라는 연말 시상식같은 내용들 이외에 등록 체크인 하는 것에서부터 동선까지 실제로 일을 하면서 직원들이 느꼈던 의견들은 오간데 없이 잃어버리신 것 같아 고구마 백개 먹은 기분이 들었다. 작년 노트해놓았던 내용을 꺼내서 다시 말씀드고 전부 다 할 필요는 없지만 개선할 수 있는 것은 한개라도 변경해서 해봤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다른 기관과의 미팅을 할 때에 숨통이 틔이는 것 같았다. 의견을 제시하고 그것에 대해서 받아들여질 때도 있고 지금 바로 미팅에서 결정할 수 없는 부분이 있지만 서로 프로그램을 같이 계획하고 조율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정말 도른자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좀 살 것 같았다. 

     

    최근에 다른 중국 기관과 베트남 이민자 기관의 담당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 때에 liability에 관해서 이야기하면서도 그랬다. 다른 기관에서 우리가 법적 대리인 (authorized representative)는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이런 법적인 책임을 질 수 없다는 것에 대해서 바운더리를 잘 만들어두는 것이 건강한 상담자-내담자의 관계를 갖게 되는 데에 중요하다는 말이 나왔다. 회사의 직원들은 그냥 이메일 인증 절차가 하나 있는 것이라서 번거롭기 때문에 담당자 자신의 이메일을 써서 그냥 빨리 진행해버린다고 했다. 이때에 부끄러움은 나의 몫이다. 일을 빨리 처리하는 효율 때문에 알려야될 권리나 책임에 대해서는 교육하기를 게을리 하고 있다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모르는 것이 죄는 아니지만) 이야기하는 것을 누가 어찌할 수 있겠냐 싶었다. 시간적인 효율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내담자와의 바운더리를 잘 지킬 수 있는 것인지 조언을 구하거나 의견을 나누는 것으로 가지는 않았다. 별문제 없었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며 넘어가버리는 코멘트들에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싶었다.

     

    아무튼 그래서 이직을 하면서도 매지니먼트를 어떻게 하는 것인지가 나의 관심사였는데, 여기에서는 아무래도 정부의 계약 형태로 일하기 때문에 서로 협력해서 정부에서 요구하는 프로그램을 맞추자는 입장으로 보였다. 그래서 상사가 직원들을 감시하거나 세세한 일들을 지시하는 것보다는 직원들이 시간 안에 여러 요구조건들을 잘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상사가 어떻게 도와야되는지 계속해서 피드백을 물어본다. 실제로 정부가 얼마나 필드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또 변경해줄지는 또 다른 큰 주제가 되겠지만 아무튼 그렇게 의견을 모으고 힘들고 잘 안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잘 안된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새삼 새롭고 또 감동적으로 느껴졌다. 지금은 나도 새로 이직을 하고 허니문 시기이기 때문에 나쁜 것이 벌써부터 보이진 않겠지만 회의에서 직원들이 '이건 정말 아닌것 같다' '아직 안해봐서 모르겠다' 이런 내용들에 대해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는 것 자체로 숨통이 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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