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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세 할머니를 엎고가는 60세 아들. 더위를 피해서 강릉으로 피서왔는데 개울을 만나서 저렇게 엎고 건너간다. 안봐도 비디오.
신발을 벗고 건너가시려는 할머니를 억지로 엎어드리고 바지가 젖던지 말던지 신이 나서 소년같이 소리내서 웃으며, 다리를 절으며 걸어갔을 우리 아빠다.
누구는 훈훈하다고 올린 이 사진을 보고는 여러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사진 한장으로 우리 아빠를 소개하라면 이걸 보여주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아빠스러운 모습이지 했다. 사람이 좋다는 칭찬이 자자한데 가족이 보기에는 좀 유난스러운-
가족들과 떨어져서 산 것도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서 이렇게 조금 떨어져서 가족을 보게 될 수 있게되면서 객관화시켜볼 수 있는 룸이 생긴 것도 같다. 최근에 아빠를 조금 이해하는 시간이 있었어서, 조금 정리해볼까 싶기도 했고. 사실 나에 대해서 이해해가는 과정에서 재미있게도 아빠를 뗄레야 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불편해하는 것도, 정도에 넘쳐보이지 않으려고 말이나 행동을 절제하는 것도 그랬다. (기승전 아빠탓을 하는 것 같지만) 나의 많은 성향에서 아빠를 너무 닮아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빠를 닮고싶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었다. 나에게는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이 아빠를 조금 더 이해하고 용서하게 되어가는 과정이기도 하고 말이다.
사실은 전혀 연관지어서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조직/공동체이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또 벗어나고 싶어하는 성향도 아빠를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안정적이고 편안한 직장을 그만두고 가족에게 부담이 될 수 있는 결정을 왜 했는지. 그 결정에 대해서 지금은 어떻게 정리했는지. 마찬가지로 불안했을 30대의 아빠를 마주해보는 시간이 있었다. 그 시기에 힘들었던 엄마 입장의 버전만 들었었으니까 나는 그때부터 무책임하고 현명하지 못한 결정을 내려버린 아빠를 인정하지 않고 가족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간을 보내게 했던 것에 대해 많이 원망했다. 그래도 그렇게 결정하기까지 내면의 갈등과 어려움들이 있었겠지 싶은 생각을 사실 최근들어 처음 하게됐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공동체에 더 잘 붙어있도록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싫고, 벗어나고 싶은 이 마음 안에서 나를 붙들어주는 건강한 공동체에 감사하게 된다. 함께 그러한 공동체를 세워나가고 자리잡아가면 좋겠다. 나의 자아가 다듬어지고, 꺾여지고 그래서 둥글둥글하고 깊이있게, 잠잠하게 잘 나아갈 수 있도록 해야되겠다고 다독여보게된다.
92세 할머니를 엎고가는 60세 아들. 더위를 피해서 강릉으로 피서왔는데 개울을 만나서 저렇게 엎고 건너간다. 안봐도 비디오. 신발을 벗고 건너가시려는 할머니를 억지로 엎어드리고 바지가 젖던지 말던지 신이 나서 소년같이 소리내서 웃으며, 다리를 절으며 걸어갔을 우리 아빠다.
누구는 훈훈하다고 올린 이 사진을 보고는 여러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사진 한장으로 우리 아빠를 소개하라면 이걸 보여주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아빠스러운 모습이지 했다. 사람이 좋다는 칭찬이 자자한데 가족이 보기에는 좀 유난스러운-
가족들과 떨어져서 산 것도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서 이렇게 조금 떨어져서 가족을 보게 될 수 있게되면서 객관화시켜볼 수 있는 룸이 생긴 것도 같다. 최근에 아빠를 조금 이해하는 시간이 있었어서, 조금 정리해볼까 싶기도 했고. 사실 나에 대해서 이해해가는 과정에서 재미있게도 아빠를 뗄레야 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불편해하는 것도, 정도에 넘쳐보이지 않으려고 말이나 행동을 절제하는 것도 그랬다. (기승전 아빠탓을 하는 것 같지만) 나의 많은 성향에서 아빠를 너무 닮아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빠를 닮고싶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었다. 나에게는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이 아빠를 조금 더 이해하고 용서하게 되어가는 과정이기도 하고 말이다.
사실은 전혀 연관지어서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조직/공동체이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또 벗어나고 싶어하는 성향도 아빠를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안정적이고 편안한 직장을 그만두고 가족에게 부담이 될 수 있는 결정을 왜 했는지. 그 결정에 대해서 지금은 어떻게 정리했는지. 마찬가지로 불안했을 30대의 아빠를 마주해보는 시간이 있었다. 그 시기에 힘들었던 엄마 입장의 버전만 들었었으니까 나는 그때부터 무책임하고 현명하지 못한 결정을 내려버린 아빠를 인정하지 않고 가족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간을 보내게 했던 것에 대해 많이 원망했다. 그래도 그렇게 결정하기까지 내면의 갈등과 어려움들이 있었겠지 싶은 생각을 사실 최근들어 처음 하게됐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공동체에 더 잘 붙어있도록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싫고, 벗어나고 싶은 이 마음 안에서 나를 붙들어주는 건강한 공동체에 감사하게 된다. 함께 그러한 공동체를 세워나가고 자리잡아가면 좋겠다. 나의 자아가 다듬어지고, 꺾여지고 그래서 둥글둥글하고 깊이있게, 잠잠하게 잘 나아갈 수 있도록 해야되겠다고 다독여보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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